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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을 위한 실험실

 

 

소보람은 흔히 ‘홍차버섯’이라고 불리는 미생물을 기른다. 이것은 엄밀히 버섯이 아니라 차 속의 당분을 먹고 자라는 여러 종류의 효모와 박테리아 공생 배양물로, 줄여서 ‘스코비(SCOBY, symbiotic culture of bacteria and yeast)’라고도 한다. 〈스마트 스킨 팜〉(2023)은 주로 콤부차 발효에 쓰이는 이 미생물 군집을 이용해서 개인 맞춤식 합성 가죽을 제작하는 실험적 프로젝트다. 전시장에는 배양액에 들어 있는 생 스코비와 그것을 양피지처럼 얇게 건조한 가죽 샘플이 비치되고, 자신만의 가죽을 원하는 고객에게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디지털 스크린도 설치되어 있다. 그 광경은 일반적인 농장보다는 시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실 또는 하이테크 공방에 가까워 보인다.

애초에 ‘피부’를 기르는 농장은 어떻게 분류되어야 할까? 미생물 배양물을 이용한 가죽 대체물은 동물을 도살하지 않고 피부만 ‘재배’한다는 넓은 의미에서 ‘식물성’ 가죽으로 취급된다. 실제로 식물 추출물을 미생물의 먹이로 주고 그 대사 산물로 셀룰로오스를 얻으므로 구성 성분상 식물에 가깝기도 하다. 그렇지만 미생물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식물의 이분법이 통하지 않는 미시적 규모의 생물학적 세계로 이어져 있다. 그들은 지구 총 생물량의 1/5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생태계의 암흑물질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식물이고, 동물은 1%도 채 되지 않는다).¹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미생물은 음식을 삭거나 썩게 하고 질병을 유발하는 미지의 요인으로서 어떤 신성한 힘이나 저주의 효과처럼 인식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 작은 생물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알지만, 그들은 여전히 물과 공기, 흙, 심지어 살과 내장에 섞여 있는 꺼림칙한 오염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미생물의 생화학적 과정은 우리가 구축해 온 자기와 타자의 경계를 침식하면서 인간의 상징 세계로 환원되지 않는 다른 역사의 가능성을 개방할 잠재력이 있다. 소보람의 작업에서 미생물은 그런 사변적 스토리텔링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보는 방식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있고, 그로부터 촉발되는 상상이 있다. 살아 있는 스코비는 마치 동물의 피부처럼 부드럽고 물컹거린다. 단일 유기체는 아니지만 먹이를 먹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성장하는 그 비정형의 군락을 작가는 ‘씨플렉스(C-Flex, Carbon Dioxide Flexioni)’라는 물질적-허구적 존재로 명명하고 수 세대에 걸쳐 배양해 왔다. 이 명칭은 〈다공성 물질 전환 I: 이산화탄소 저장소〉(2022)에서 처음 도입됐는데, 이때 씨플렉스는 2050년 스위스 레만 호수의 이산화탄소 포집 시설에서 발견된 미지의 미생물로, 용존산소량이 부족한 호수 심층부에서 산소를 발생시켜 거주가능성을 회복하는 미래로의 매개자로 그려졌다. 반면 〈다공성 물질 전환 II: C-Flex 인큐베이터〉(2022)는 미생물 배양 수조를 혐기성 미생물과 호기성 미생물이 공존하던 원시 지구의 축소모형으로 제시하면서, 대기의 조성이 변화하는 극단적 생존 조건에서 멸종과 진화를 거듭했던 미생물의 역사를 기후 위기 시대의 미래에 투영했다.

씨플렉스의 이야기는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주제가 변주되는 허구적 평행우주들을 증식시킨다. 인간 중심적이고 통제 불능인 현재의 세계는 어떻게 또 다른 세계로 전환될 수 있을까? 첫 번째 이야기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미생물을 그 조력자로 세운다면, 두 번째 이야기는 인류와 비교할 수 없는 시간적 규모 속에서 행성의 거주 환경을 변조하고 그에 적응해 왔던 미생물의 역사를 전면화한다. 작가는 장기간의 스코비 배양을 통해 거주 환경과 거주자들, 그리고 그들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물질적 부산물의 구별이 흐려지는 역동적 상태를 경험하고 이를 다시 새로운 씨플렉스의 이야기에 반영했다. 최신 버전인 〈스마트 스킨 팜〉은 생육 조건과 먹이에 따라 스코비의 색상과 무늬가 달라진다는 데 착안한 것으로, 이 ‘살아 있는 물질’의 계보를 그리고 그 다양성을 증진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하여 미생물에게 ‘먹인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개인화된 가죽을 얻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성장을 위한 특별한 사료로 전환된다. 여기에는 종적 차이를 가로지르는 물질화된 기억의 교환을 통해 인간의 교만하고 절망적인 고립을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 더 나아가 인간을 먹고 먹히는 생태적 관계 속으로 되돌리고 싶다는 폭력적인 구원의 열망이 깔려 있다.

 

인간이 기르고, 죽이고, 취하거나 내팽개치는 동물들에 대한 관심은 소보람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원래 작가가 스코비를 배양한 것은 인간에 의해 살해당한 모든 사슴들을 기리는 어떤 종류의 기념비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박제사의 대기실〉(2021)에서 미생물 합성 가죽을 이용한 동물 박제처럼 상상되었다가, 이듬해 〈다공성 물질 전환〉 연작에서 과거와 미래의 모든 동물들이 죽고, 분해되고, 새로운 종으로 부활하는 상상적이고 실제적인 배양액의 끈끈한 피막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야 한다. 기존 작업이 이러한 재생 또는 환생의 소망을 허구적으로 실현했다면, 〈스마트 스킨 팜〉은 물질적 수준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스코비를 매개로 하는 종적 만남과 변신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이것이 씨플렉스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인지, 아니면 사변적 스토리텔링에서 좀 더 본격적인 생화학 공장으로 이행하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두 가지 가능성에 모두 열려 있고, 아마도 그 때문에 작업의 서사적, 형식적 측면이 양쪽 모두 스코비처럼 무르고 불확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 순수 효모와 달리, 건조 스코비는 배양액에 넣어도 원래대로 되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 무두질한 가죽 같은 그 질감은 어쩔 수 없이 죽음과 노화를 연상시킨다. 스코비와 유사한 방식으로 생산되는 박테리아 셀룰로오스는 이미 화상 치료용 거즈나 마스크팩 재료로 쓰이고 인공 피부의 재료로도 연구되고 있다. 그 부드러운 피막은 새살이 돋기 위한 양분과 지지대를 제공하고 어린 피부를 약속하는 신소재다.² 하지만 〈스마트 스킨 팜〉은 그렇게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약속하지 않는다. 빠르든 늦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있고, 그 비가역적 시간 속에서 분해자들이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가운데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생태적 정의와 회복이 실현될 것이다. 생명공학 스타트업 같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는 그런 체념 섞인 위안 속에서 새벽녘인지 황혼인지 분간할 수 없는 희부연 어둠을 두르고 있다. 현재의 어둠을 먼 과거와 미래의 깊은 시간에 비춰 보는 소보람의 작업이 어떤 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은 동물인 동시에 동물이 아닌 자기 모순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어떤 희망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윤원화

¹ Bar-On YM, Phillips R, Milo R, “The biomass distribution on Earth,”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no.115, vol.25 (2018):6506-6511. http://doi.org/10.3390/biology13020085.

² Ahmed Amr and Hassan Ibrahim, "Bacterial Cellulose: Biosynthesis and Applications," Next-Generation Textiles (London: IntechOpen, 2022), http://doi.org/10.5772/intechopen.10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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